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숨을 쉬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묻는 사람을 만납니다. 저같은 경우는 대부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요.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문제는 특히 그렇죠. 저는 아직 무얼하러 인간이 살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정도만 추측해 보죠. 그런데 은연 중에 아무 대답이나 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럼 마치 내 인생이 내가 멋대로 답해버린 대로 흘러가 버릴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우리가 했던 말들이 언젠가 '우리
이야기'란 명찰이 되어 가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상..같은 걸 하는 거죠.
이번 주 '첩첩책중'에는 다양한 인생의 단면이 담긴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는가 하면,
노회한 작가가 네티즌에게 띄우는 댓글이 있고, 스타일 좋은 패션지 기자의 삶이 있는가 하면 웃다웃다 울게 만드는 중국 서민들의
이야기가 있지요. 와중에 누군가는 실존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범죄가 만연한 현실을 걱정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 유럽, 미 대륙을 거친 이야기들은 결국 '인간의 삶'을 속삭이고자 이곳까지 당도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넘어갈
수 있다면, 사실 이 페이퍼는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

글솜씨 탁월하기로 소문난 중국 작가 쑤퉁의 중편 소설집
<마씨 집안 자녀교육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그야말로 '애환' 그 자체입니다. 특히나 표제작 '마씨 집안 자녀교육기'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희비극입니다. "그래 이 맛에 중국 소설을 읽는 게야"하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아들이 잘못할 때마다 따귀로 길들여온 눈먼 노인 마헝다, 따귀를 맞고 자라 이제는 누구보다 따귀를 잘 때리는 남자가 된 아들
마쥔, 마작 판에서 따귀 세 대를 맞고 마쥔과 이혼한 여인 장비리까지. 가난하고 복도 없지만 그래서 더 사람 냄새가 짙고 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일궈내는 드라마지요.
두 눈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눈치가 빠른 마헝다는 아들 마쥔의 일에 시시콜콜 간섭하지만, 마쥔은 그런 마헝다의 감시를 벗어나
'프로 드링커(전문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 직업적 술 상대 정도)'로 취직합니다. 아들을 건실한 사내로 만들려는 마헝다와 제
마음껏 살아가고 싶은 마쥔의 이야기는 경쾌하게 흘러가지만, 종국에 이르러 눈물을 훔치게 하는 구석도 있습니다.
사람 냄새 팍팍 풍기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대개 그렇듯 웃다가도 울게 되고 울다가도 웃게 된다고 할까요. 이런 걸 '페이소스'라고
하는 거겠죠. 세련되고 완벽한 이야기에 지친 분이라면 당장 이 책을 집어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짠-한 감동이 묻어나는
진짜배기 이야기거든요.

한편, 이런 마씨 집안 이야기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어쩌면 이 소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번째 세계문학상의 주인공
<스타일>인
데요.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자였던 백영옥의 세계문학상 당선작입니다. 실제로 패션지에서 기자로 일했던 작가가 선택한 것은 바로
자신과 동일한 직업을 가진 삼십대 직장인 '이서정'의 이야기인데요. 이 '이서정'이란 캐릭터에 대해서는 다음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에르메스 백과 마놀로 블라닉 슈즈에 대한 욕망과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욕망 사이를 넘나드는
패션지 8년차 여기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도 같으니 '세계문학상'이라는 감투를 거머쥔 연유가 궁금할 밖에요. 주인공의 욕망은 소비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그야말로 요즘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누구도 '이서정'에게 뭐라 할 수 없겠죠. 스스로 '가식이
아닌가'하고 고민하는 것은 현대인의 필수 소양이니까요.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적절히 소비하고 싶고, 문화도 향유하고
싶고, 스타일도 좀 있어보이고 싶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문제는 이러한 고민, 자신이 속물일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이죠. 나이는 들어가고 일상은 지리하고 사표는
던지고 싶고, 하지만 돈은 없어 꾸역꾸역 해 나가는 일상. 어쩜 현대인들의 공포를 집약한 호러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함과
재미는 이제 장편 소설의 기본 소양이 된 것 같습니다. 요는 여기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겠네요.